토끼와 사자의 비유
착한 토끼가 걸어온다
손을 내밀어본다
햇살을 머금은 그것의 머리가
내 손에 온기를 전한다
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얼굴을 살며시 쥐어본다
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어준다
이 가녀린 동물의 나약함에 동정 한 줌을 담아서
이 생명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 한다
이것이 만약 내 손가락을 깨물더라도
손가락에는 하찮은 이빨자국만이 남는다
처음에 나는 이 토끼에게 착한 토끼라고 말했다
착한 토끼...
착한 토끼라기 보다는 토끼라고 부르도록 하자
...
토끼가 걸어온다
손을 내밀어본다
햇살을 머금은 그것의 머리가 투덜거리듯 머뭇한다
결국 내 손에 또 한번 온기를 전한다
토끼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.
그의 나약함에 의해, 저항할 수 없었다
착하다는 말은 토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
토끼는 그냥 토끼인 것이다
그의 나약함에 동정을 거리낌 없이 보낼 수 있을 만큼
그것은 그저 토끼인 것이다
착하다는 말이 어울리기 위해서 그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
착한이라는 단어는 사자에게 양보하도록 하자
사자가 착하다고?
저 언덕 위를 보라
이 단어가 어울리는 것이, 저기 언덕에
아무 두려움 없이 서 있다
나는 그 사자를 본다
주춤...다가가기가 무섭다
당신이라면 당당히 저 언덕을 오를 수 있겠는가
그럼에도 한 발씩 다가가본다
어느 순간에 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있다
동공이 수축되는게 느껴지고 식은땀이 흐르려고 한다!
내 다리와 팔이 자기 멋대로 살짝 접힌 채 망설인다!
그런데, 그런데 말이다...그 사자의 얼굴에는 우리를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
다른 사자와는 다른 것 같다
용기를 내서 조금 더 다가가 보자
나는 결국에 그 앞에 서버렸다
그의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
어느 밤 중 고요한 숲 속의 깊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넋놓고 보고 있다
그러자 사자의 발이...손이 올라온다!
하지만 확신이 있었다
저 손은 나의 숨통을 단칼에 멎게 할 것이다
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
하지만...
그 손은 내 머리를 감쌀까?
그 손은 내 엉덩이를 토닥일까?
그 손은 내 확신을 배신하며 목으로 향할까?
의심하며 기다린다
그 손은 내 어깨로 향했다
이 사자는 착한 사자다
이 사자는
나를 핏덩이로 만들 수 있었고
나를 그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토양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고
나를 저 언덕 밑으로 날려 보낼 수 있었다
하지만 이 사자는 착해서
나는 사자 앞에 여전히 서 있고
이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있을 수 있으며
다시 언덕 밑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
이렇게 착하다는 것은 강인함이며
누구도 자신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확신이며 굳건함이다.
언덕을 내려오니 저기 토끼가
나약하고 순진하다고 불러 마땅한 토끼가 걸어온다
토끼가 내 눈을 바라본다
어느 날의 나 처럼, 발이 얼어 붙은 것인지 미동이 없다
기다려본다
그리고 토끼가, 준비를 마친 토끼가 걸어온다
그 토끼는 내 눈을 올려보며 서 있다
햇살을 머금은 그의 털들을 내려다보며
나의 손을 올려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
토끼가 뒤돌아 서서 걸어간다
다음 순간에 토끼가 아닐 것이 걸어간다
무엇이 될까 기대를 해본다